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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눔 Bible note

믿음으로 산다는것은

Community Center Father's 2018.03.15 17:17

믿음으로 사는 길/ 6: 25-34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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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이 어려운 형편을 대처하는 방법은 세상 사람들이 대처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태산이 험하고 높을수록 우리는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를 사랑하신다고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 교회를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우리 새하늘교회를 통하여 이땅이 회복될 것을 믿습니다. . 많은 사람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부패하고 세속주의에 물이 들어 있지만 적어도 이새벽을 깨운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바로 회개만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줄 저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면서 큰 믿음을 가지고 우리 앞에 있는 문제들을 하나 하나 대처하고 처리해 나가야 합니다.

믿음은 실천입니다. 믿음은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은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두 가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함께 말씀 드리면서 은혜

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로는,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염려를 하지 않는 것이 믿음의 행동입니다. 25절 이하를 보십시오. 예수님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눈만 뜨면 무엇 먹어야 하나, 날이 새면 오늘 무슨 옷을 입어야 하나, 무엇을 몸에 걸치고 나가야 하나를 걱정하는 생활이라고 하면 이것은 완전히 밑바닥 생활입니다. 우리 중에 눈만 뜨면 이런 걸 가지고 걱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삶을 사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머리 둘 곳이 있지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분이셨습니다. 때가 되면 어디 가서 무엇을 먹을 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런 것들로 염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자세를 요구하십니다. 설사 그러한 궁핍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5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7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그게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까? 염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염려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당장 생활이 어려운데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자꾸 억누르면 오히려 정신적으로 병 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염려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하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거듭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몇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를 먹이고 입히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봐라. 먹이고 입히는 분이 누구냐?

지금까지 네가 먹고 살아온 그 모든 과정을 한번 돌이켜 봐라.

누가 먹였느냐? 네가 쌓아놓고 먹었느냐? 누가 마시게 했느냐? 누가 입혔느냐?

네가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았느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고 오늘까지 돌보아 주신 것이 아니냐?

그런데 왜 하나님의 걱정을 네가 도맡아 하느냐?"

하나님이 하실 걱정을 도맡아 하다니 얼마나 바보스럽냐는 것입니다.

물론 생활 걱정으로 날마다 얼굴을 찌푸리고 계시는 분들 중에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제가잘압니다. . 당장 직장이 날라가고 내일 어떻게 살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 되면 염려를 안할 수 없는 것이 인간적인 심정일 것입니다.

 

가정에서 어린 손자, 손녀가 "아이고 국가 부도를 당했다고 하는데 할아버지, 내일 뭘 먹고살지요? 우리 학교는 어떻게 가지요?"하며 날마다 염려하며 밥도 안 먹고 앉아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웃긴일입니까? 아무리 지금 당장 쓸 게 없어도 //아빠나 할아버지가 보고 가만히 있겠어요? "뭐 이런 애가 있어? 정신 차려. 이 놈아!"하고 타이르지 않겠어요? 당장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염려하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정신차려라. 내가 너희를 먹이는 데 네가 왜 도맡아 걱정을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 수백 만 명이 시내산 광야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시내산 광야는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땅입니다. 먹을 것도 없습니다. 사냥도 할 것이 없습니다. 물로 없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기에 수백 만 명을 몰아 넣고 40년 동안 먹이고 마시우고 입히셨습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데, 그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어떻게 조금 궁색해졌다고 해서 날마다 걱정하느냐 그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염려하는 자들을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0절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우리는 걱정을 다 쓸어내는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의 염려가 쓸데없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10분 염려하면 1밀리미터가 자라고 1시간 하면 1센티미터가 자란다고 하면 저도 걱정을 하겠습니다. 저도 조금 더 컸으면 좋겠거든요. 제딸 하엘이가 키가안커서 재 왜이렇게 안크지 걱정한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한 꼴이 되었습니다. 너무 잘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보시기에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염려는 주제 파악을 못한 데서 오기 때문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보통 염려라고 하면 미리 앞당겨 놓고 걱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장 내 앞에 지금 먹을거리가 없어서 염려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미리 앞당겨 놓고 걱정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내년에 어떻게 살까? 내일은 어떻게 돈을 쓸까? 20년 후에 노년이 되면 어떻게 살까? 별의별 걱정을 당겨 놓고 하는 것이 염려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내일이라는 것이 나의 시간이 되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습니까? 내일이 내 날입니까? 아니요.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만 내 날입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면 내일은 내 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미리 당겨놓고 걱정합니까? 1년 후에 내가 살아 있을지 죽어있을 지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만 내가 1년 후에도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 나의 모든 생은 다 그의 손에 있습니다. 죽음과 삶의 열쇠를 하나님이 쥐고 계시는데 괜히 내일 일을 앞 당겨 놓고 제가 잘나서 사는 것처럼 걱정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소로운 일이겠습니까?

염려란 이처럼 자기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큰 믿음 가진 사람이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할까, 어떻게 하면 이 세상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이 하루라도 빨리 재림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의 마음에 원하는 일을 먼저 할까 하는 것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어떤 때는 시간을 바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어떤 때는 젊음도 송두리째 희생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어떤 때는 가난과 불편함을 감수하며 우리가 가진 재물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먼저 씁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내 형편에 따라서 주의 나라와 그 일이 좌우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부자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20절에

있는 말씀대로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주님이 주신 재물을 기쁨으로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필요하시다면 내가 덜 써도 주님을 위해서 내 놓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필요하시다면 내가 쓰려고 계획했던 것도 뒤로 미루고 그 일을 앞세워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재물을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이런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 동안 교회를 위해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자기 옷은 아주 값싼 것을 사 입어 가면서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귀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일각에서는 자기를 위해서는 풍성하게 쓰지만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는 너무나 인색한 분들도 교회 안에 꽤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떨어야 합니다. 끝까지 그러시면 하나님이 주셨던 물질을 한 순간에 다 빼앗아 가실 지도 모릅니다. 요즘 부도 만나는 사람들 보십시오. 한 순간에 다 날라가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빼앗으면 한순간에 다 없어집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궁핍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은 궁핍할 때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궁해지면 누구나 생각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되게 되기 쉽습니다. 자꾸 생활이 어려워지다 보면 '내 코가 석잔데'하며 자기 걱정만 합니다. 자기 식구 걱정만 합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2선으로 물러갑니다. 그래서 자기나 자기 식구가 최고의 관심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황급한 상황이 되어도 믿음을 가진 사람답게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우선에 두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걱정을 대신 책임져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분명 우리 귀에 이렇게 속삭일 것입니다. ', 경제가 어려운데 너 여러 가지 좀 잘 생각해봐. 헌금도 좀 잘 생각해봐. 생활을 낮춘다고 해도 어느 수준까지는 유지해야 될 거 아니냐? 그러기 위해서는 너 지혜롭게 잘 생각해야 돼. 믿음이라는 건 그렇게 맹종하는 것이 아니야.'

그러나 여러분, 사렙다 과부 이야기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3

년 반 동안 이스라엘을 강타한 무서운 기근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아들과 함께 곡간에 있는 양식을 아끼면서 근근히 버티다 결국 막바지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겨우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밀가루 조금과 기름 몇 방울밖에 남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 마저 끊어지면 이제는 어디 가서 손 벌릴 데도 없었습니다. 온 세상이 지금 못 먹어 가지고 허기진 짐승이 되어 있는데 어디 가서 먹을 것 찾겠습니까? 그래서 그녀는 '남은 것 마저 구워 먹고 이젠 죽자'라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불을 피우려고 마른나무 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그때 엘리야 선지자가 찾아왔습니다. 엘리야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의 집에 있는 통에 그 밀가루 가지고 떡을 만들어서 나에게 먼저 가지고 오라. 만약 나에게 먼저 가지고 와서 나로 먼저 먹게 하면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셔서 기근 동안 너의 모자가 굶어 죽지 않도록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없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공급하실 것이고, 기름통에 기름이 없어지지 않도록 공급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니 너는 가서 빵 구워 가지고 내게로 먼저 가지고 오라."

그녀의 입장에서 얼마나 고민이 되었겠습니까? '. 만일 여러분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놀랍게도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로 하고 엘리야에게 그 떡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기근이 다할 때까지 가루 통에는 먹고 나면 또 생기고 먹고 나면 또 생기고 기름통에는 계속 기름이 남아 있는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궁핍하고 가난해도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필요할 때에는 내가 못 먹어도 드리고, 내가 쓸 것을 못 쓰더라도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필요하다면 내놓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큰 믿음은 우리의 발상을 전환시킵니다. 큰 믿음은 세상 사람처럼 우리가 살지 못하도록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놓습니다. 작은 믿음은 세상 사람을 따라가게 만듭니다. 작은 믿음은 이 세상의 물 흐르는 대로 걸어가도록 항상 우리를 던져 놓습니다. 여러분 어느 믿음을 갖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적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경제가 어려우니까 헌금 좀 줄이자." 아마 몇 달 지나면 헌금이 자꾸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기름 값도 많이 올라가는데 기름 아끼기 위해서 매주마다 교회 갈 거 뭐 있냐? 두 주에 한번씩 세 주에 한두 번씩 교회 가자."

"선교는 무슨 선교냐? 때가 어려우니 만큼 선교사를 전부 불러들이도록 해라." 그리고 주일 학교 어린 자녀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이 어려운 때 뭐 그런 걸 하느냐? 다음에 사정이 좋아지면 하자" 라며 못하게 막을 것입니다. 또 감사 헌금이 어디 있어요? "이 어려운 때 감사는 무슨 감사냐? 불평을 해도 한이 없는데"라면서 감사 헌금도 안 할 것입니다. 믿음이 작기 때문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주의 마음에 드는 큰 믿음을 가져봅시다. 주님이 우리의 믿음을 저울에 달아보고 정말 흡족해 하시도록 해 봅시다.

우리가 큰 믿음을 가지면 염려를 몰아낼 수 있습니다.

큰 믿음 가지면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의 나라를 먼저 앞세우는 하나님의 백성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심을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 이런 큰 믿음 가지고 우리 앞에 있는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아름다운 신앙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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