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2장 18절-25절 :과거에 발목잡힌 사람들:주일설교

과거에 발목 잡힌 사람들

 

창세기 42:18-25

 

 

 

요셉의 꿈은 성취되었지만 요셉을 팔았던 형들은 깊은 갈등에 빠집니다. 과거의 죄에 발목 잡혀 사는 요셉의 형들을 보며 우리의 오늘이 /먼 훗날 나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아름답게 살기를 다짐하기를 바랍니다.

 

 

 

형들을 압박하는 요셉

 

 

 

요셉은 왜 형들에게 자기를 알리지 않았을까요?

왜 정체를 숨긴 채 형들을 압박했을까요?

그는 엄한 소리로 형들을 정탐으로 몰았고 그로 인하여 형들은 자기 가정의 내력을 다 고하며 믿어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막내 아들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고 압박하였습니다(7-17). 그리고 시므온을 인질로 삼습니다(24).

 

마치 형들에게 복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미 형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덮었습니다.

 

45장에서 형들에게 자기의 정체를 밝힌 뒤에 //두려워하는 형들을 위로하며 자신이 애굽에 온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것임을 밝힙니다(45:3-8).

 

24절에 보면 요셉은 형들을 압박하면서도 그 정을 억제 하지 못해 밖으로 나가 울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요셉이 이렇게 형들을 압박하는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형들의 죄를 생각나게 하고 //형들로 하여금 진지한 회개를 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이를통해서 그들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확인하였습니다.

 

 

 

과거의 죄를 떠올리는 형들

 

 

 

형들은 요셉으로부터 압박을 받으면서 자기들의 죄를 떠올렸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죄입니다. 20여년이 지나는 동안 그들은 애써 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스스로도 끄집어내기 불편한 과거의 죄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죄가 생각나고 그것을 언급하기 시작했니다(21-23). 자기들이 동생을 괴롭게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지금 어려움을 당한다고 스스로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어려움은 우리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내가 과연 바르게 살아왔는지, 또 혹시 내가 죄를 지은 것은 없는지 살펴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겪는 어려움은 유익이 됩니다. 나를 돌아보고 나의 삶을 건강하게 세우는데 유익합니다. 어려움을 만나면서도 그런 돌이킴과 자기반성이 없다면 그 사람은 심각한 사람입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극을 통해 우리를 영적으로 건강하게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

 

형들은 생각지 못한 문제 앞에서 자기들의 과거 죄를 떠올렸습니다. 요셉이 그런 그들의 대화를 다 들었습니다.

 

계속 이들의 이런 죄책감은 계속됩니다. 요셉은 형들을 돌려보내면서 형들의 곡식 자루에 곡식 값을 그대로 넣어두었습니다. 길에서 그들이 먹기 위해 곡식 자루를 풀었다가 그것을 확인한 후 그들은 또 갈등합니다(28).

 

애굽의 총리가 바로 자기들이 판 요셉임을 확인했을 때도 반가움이 아닌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45:3-5).

 

이런 형들의 두려움과 갈등은 창세기가 끝나는 50장까지 계속됩니다. 아버지 야곱의 장례식을 치른 후 형들은 동생 요셉이 복수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요셉 앞에 엎드려 용서를 다시 구합니다. 없는 아버지의 유언을 만들어가면서까지 그들은 요셉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50:15-21).

 

과거가 그들의 발목을 계속 잡습니다. 해결된 것 같은데도 죽을 때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편치 못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죄로부터의 자유함을 누리며 삽시다

 

 

 

무엇을 보여줍니다.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죄를 지었을 때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했다면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깨우쳐줍니다.

 

회개란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고 하나님께만 용서를 구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풀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산상설교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것보다 형제와의 화해와 관계 회복이 먼저임을 깨우쳐주셨습니다(5:23-24).

 

욥기의 마지막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욥을 괴롭히던 친구들과 화해를 시키시는 하나님께서는 욥의 친구들이 먼저 욥과 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42:7-9).

 

진정한 회개는 사람과 풀어야 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게 지은 죄를 요셉에게 사죄하고 풀어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덮고 살았지만 당사자에게 회개하지 않았기에 갈등과 번민의 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아울러 회개하고 정리했다면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십시오. 죄책감은 사단이 우리를 힘들게 하기 위해 남겨두는 것입니다. 이미 용서받았는데 자꾸 생각나고 불편한 것은 불신앙입니다. 형들이 50장에서 바로 그런 해결되지 않는 죄책감이 남아 있던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정죄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죄로부터 자유함을 주신 것입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끌려온 여자도 주님은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8:10-11).

 

바울 사도가 주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을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8:1-2). 그리고 누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자들을 정죄할 수 없음을 확인해 주셨습니다(8:33-34).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결코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이 자유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상처, 죄책감은 우리로 하여금 불안하게 하고 또 우리를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하신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집고 가겠습니다.

 

죄에 대한 보응은 있는가?”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회개한 죄에 다하여 보응은 없습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도 없습니다. 내 죄로 인하여 내가 책임질 뿐 내 자녀 대에 죄로 인한 보응을 받지도 않습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라는 책은 매우 이단적인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다윗의 경우를 죄에 대한 보응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특별한 사례입니다. 삼사 대까지죄를 갚거나 천 대까지복을 주신다는 의미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전통도 이어가고 못된 전통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잘못 가르치므로 잘못된 행동이 이어지면서 스스로 복을 잃는 것이지 부모의 죄가 자녀들에게 전가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심은 것을 거두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과거의 죄를 완전하게 떨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을 선하게 살면서 좋은 열매를 계속 맺어가는 것입니다. 그 선한 삶을 통해 좋지 못한 기억을 밀어내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우리는 훨씬 건강한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울러 과거의 나의 선한 일, 특히 누군가를 위해 베푼 따뜻한 손길은 생각도 못한 놀라운 상이 주어진다는 것도 기억합시다.

 

주님께서는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해도 상을 잃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0:42).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피해 도망해야 하던 처절한 순간에 그를 위해 음식과 생활용품을 준비한 바르실래 덕에 그 아들들이 다윗이 죽고 난 후까지 복을 누립니다(삼하 17:27-29, 19:31-39, 왕상2:7).

 

나의 과거가 나를 웃게 할 수 있는 그런 삶의 흔적을 남깁시다. 그런 삶의 복된 걸음을 걷고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을 남깁시다. 그래서 과거의 흔적이 내가 생각도 못한 복으로 바뀌는 삶을 삽시다.

 

우리의 과거가 나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좋은 흔적 남깁시다. 아울러 실패했던 과거는 지우십시오. 주 안에서 과거의 죄로부터 자유함을 누리십시오.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 심어주고 떠올리면 행복할 수 있는 과거를 많이 가지고 삽시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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