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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눔 Bible note

열정만있으면 안된단다..

Community Center Father's 2018.03.15 14:11

ㅇㅇㅇ

하나님의 은혜를 요즘은 많이 받습니다. 

그만큼 간절함이 많이도 생긴것 같습니다. 

오늘 설교를 올려 나눔합니다. 

열정만있으면 ...(1:40-45)

 

40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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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페인의 한 80대 할머니가 19세기 유명 벽화를 훼손한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이 할머니가 다니던 성당에는 스페인 화가 마르티네즈에케호모(이 사람을 보라)’라는 벽화가 있었습니다. 이 벽화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비스듬히 하늘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며 그 벽화가 습기 때문에 망가지자, 이 할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붓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성껏 작품을 복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마르티네즈의 손녀가 이 작품을 살펴보기 위해 도착했을 때, 그녀는 까무러칠 뻔했습니다.

할아버지 마르티네즈가 그렸던 예수님이 빨간 털 두건을 둘러쓴 기괴한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마르티네즈의 손녀는 격분했지만, 이 기괴한 작품을 그린 할머니는 오히려 자신은 성당을 아끼고 사랑했을 뿐이라며 당당했습니다.

스페인 문화당국은 이 할머니의 선한 의도는 인정했지만, 복원불능 상태가 되어 버린 작품을 놓고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일부에서는 문화재를 무단으로 손상시킨 이 할머니를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습니다.

이 할머니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요?

열정은 넘쳤지만 실력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열정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실력도 지혜도 없이 열정만 있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더 골치 아픈 문제를 일으키기 십상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는 열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에도 열정이 넘치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께 고침 받은 나병환자였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열정의 결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열정은 복음전파로 이어졌지만, 이 나병환자의 열정은 복음전파의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과연 예수님과 나병환자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도 열정만 있는 문제의 사람이 아니라,

긍정적인 열매를 맺는 열정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기도해야 목표를 잃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각종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시자, 예수님은 잠시도 쉴 틈이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곳에는 항상 병자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예수님은 그들을 일일이 고치시느라 밤늦도록 쉴 수가 없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 정도 시달리고 나면 피곤에 지쳐 뻗어 버립니다.

그리고 늦은 아침이 되도록 깊은 잠에서 깨어날 수가 없습니다.

설사 잠이 깼어도, 좀처럼 일어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동트기 전, 새벽에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피곤을 느끼시지 않는 철인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보통 사람들과 동일한 고통과 피곤을 느끼셨지만, 그 새벽에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대목을 얼핏 보면 이해가 되기보다 의문만 생깁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실 필요가 있으셨을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이미 권세와 능력이 충만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냥 충분히 쉬시고, 느긋하게 일어나셔서 일하시면 되지 않았나?’

충분히 일리 있는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들은 기도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얻어내기 위하여 졸라대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기도를 통해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도의 본질이나 근본적인 목표는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만나서 대화하는 것, 하나님과 사귀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자녀가 용돈이 필요하거나, 자기가 사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에만 부모님을 찾는다면,

그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좋아질까요?

물론 부모님은 그렇게라도 자녀를 만나는 것이 기쁘겠지만,

자녀는 부모님을 이용하는 것일 뿐, 부모님과 만난다, 대화한다, 사귄다라고 말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무엇을 얻어내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의 만남 그 자체를 좋아하고 즐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치 첫사랑에 불붙은 연인들처럼, 자신의 달콤한 휴식과 잠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이 넘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기 위하여 나가신 후, 뒤늦게 잠에서 깨어난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기 위하여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른 아침부터 병자들과 구경꾼들이 잔뜩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기도하고 계시던 예수님을 찾은 제자들은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마가복음 1:37).

마치 스타 매니저들이 스타들을 위하여 스케줄을 짜듯,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일정관리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마가복음 1:38).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피하시고,

갈릴리 지역의 다른 마을들과 회당들을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대체 왜 이러셨을까요?

이런 행동은 예수님의 열성팬들에 대한 실례가 아니었을까요?

이 대목에서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의 광야 금식기도 중에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신 것처럼, 매우 단호하게 행동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았지만, 예수님은 단순히 용한 의사또는 용한 무당이 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전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병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것은 전도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효과이지,

그 자체가 전도의 목표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구름 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어도, 예수님은 과감히 그 인기의 유혹을 뿌리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당장의 인기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토록 굳게 사명의식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예수님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만남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목표를 잃지 않습니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목표를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삶의 목표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바쁜 일정에 쫓겨 정신 없이 살다가,

어느 날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뼈빠지게 고생하며 정신 없이 살지?’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사람들은 말로 다 표현 못할 허무와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이 자신의 뜻과 욕심을 고집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봉사하면,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렇게 고생하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며 우울해집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봉사하면, 남들이 자신의 헌신과 노고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서운한 생각이 들며 불평을 터뜨리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지 않아 신앙생활의 목표를 잃어 가는 징후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은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처럼 기도를 통해 분명한 삶의 목표를 붙잡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순종 없는 열정은 반항이다.

열정적인 전도자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며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던 중에, 나병환자 한 명이 다가왔습니다.

과거에는 문둥병’, 그리고 현재에는 한센병이라고 불리는 나병은 전통적으로 천형(天刑)’, 하늘이 내린 벌로 이해되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은 나병환자가 성물은 물론이고, 일반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하였습니다.

하다못해 나병환자는 가족과도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레위기 13:45-46).

그런데 이런 나병환자가 당시의 엄격한 종교법을 어기고, 대담하게 예수님께로 다가왔습니다.

자칫 종교지도자들의 눈에 띄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병환자가 예수님 앞에 이르자 갑자기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마가복음 1:40).

이 나병환자는 자신의 병이 예수님의 마음에 달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만 먹으시면, ‘하늘의 벌을 받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자신도 고침 받을 수 있다며 부르짖었습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이 마지막 희망이었기에, 목숨을 걸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자 애가 탔습니다.’

그래서 그 나병환자를 직접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마가복음 1:41).

이 순간 예수님도 당시의 종교법을 어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는 율법적 전통을 지키는 것보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예수님의 자비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나병은 깨끗이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은 고침 받은 나병환자에게, 율법에 따라 정상적인 시민이 되는 절차를 밟으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하여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구령을 내리신 이유는 몇 가지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제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 몰려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의 문제는 당시의 종교법에 따라 나병환자들과 일반인들이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일반인들은 나병환자들에게 떠나라고 요구할 것이고, 나병환자들은 일반인들에게 떠나라고 아우성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청중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과 분쟁이 생기게 됩니다.

둘째, 나병환자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당시의 종교법을 어겼기에, 종교지도자들이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복음을 제대로 전하기도 전에, 종교지도자들과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이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야 합니다.

셋째, 나병환자의 소문을 듣고 더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몰려들면서,

정작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할 시간을 빼앗기게 됩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전념하고자, 자신에게 몰려왔던 사람들조차 피했던 예수님의 뜻과도 반대되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나병환자를 고쳤다는 소문이 퍼지면, 여러 가지 이유로 예수님의 전도계획에 심각한 차질이 생깁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불가피하게, 귀신들의 입을 막았듯이, 고침 받은 나병환자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감격한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 사실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마을과 도시에는 더 이상 공개적으로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마가복음 1:45).

결국 열정만 있고 순종은 하지 않은 나병환자가 예수님의 전도계획을 심각하게 망가뜨린 것입니다.

 

우리들의 열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생활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열정은 오히려 불편함을 겪는 일로 변하기 십상입니다.

또한 마음만 뜨거웠지, 말씀과 성령에 의해 다듬어지지 않은 인격은 오히려 모난 돌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날카로운 상처를 남깁니다.

그래서 순종 없는 열정은 사실상 하나님에 대한 반항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첫째 왕이었던 사울은 남다른 장점과 열정이 있었던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되어 교만해지자, 하나님의 말씀을 순순히 따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나님은 사울 왕에게 아말렉 족속을 치되, 사람이나 가축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은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상품 가치가 높은 가축들은 남기고, 쓸모 없는 가축들만 죽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느냐?’고 따지자,

사울 왕은 좋은 가축들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라며 핑계를 대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는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사무엘상 15:22-23).

즉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좋은 제물보다도 낫고, 그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다고 못 박아 말했습니다.

결국 사울 왕은 하나님에게 버림 받고 말았습니다.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더욱이 과거의 권위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많은 젊은이들은 기존 문화와 질서에 대한 반항을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의 악습과 폐단은 철폐되어야 하고, 부당한 권위들은 청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것이라고 무조건 다 내다버릴 쓰레기는 아닙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시대가 변해도 잃지 말아야 할 가치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르치는 영적 지도자들의 정당한 영적 훈육에 대한 순종입니다.

자신의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하는 그릇된 가르침과 언행을 일삼는다면 당연히 거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영적 지도자들이 분명한 말씀의 근거를 가지고 여러분을 지도하고 가르칠 때에는,

그 지도자의 연령, 성별, 학식, 배경과는 상관 없이 순종해야 합니다.

출근길 혼잡한 교차로에서 교통경찰의 수신호를 무시하는 차량은 교통혼란을 가중시켜 다른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줍니다.

교통표지판과 신호등을 무시하는 차량은 대형사고를 일으키게 됩니다.

여러분의 영적 지도자들은 이 심각한 영적 혼돈시기에 여러분을 안전하게 인도할 영적 교통경찰이며, 신호등이며 표지판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히도록, 영적 지도자들에게 순종하십시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브리서 13:17).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열정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 훈육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열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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